#제국주의 #한국사 #일본사 #식민지조선 #일제강점기

쇼와시대 일본제국에 의한 조선강제 점령과 통치는 당시 8090년대의 전지구적인 규모의 유럽발 제국주의 (대표적으로 영국제국)의 유행에 따른 결과물이자 한국과 일본 양국 사회에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와 수혜자, 그리고 그런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갈등요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다룰 사안이 아닙니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4080508330004741

6월 24일 찾은 일본 사이타마현 세이부엔 유원지. 쇼와(昭和·히로히토 일왕의 연호) 시대(1926~89)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1950, 60년대에 있었을 법한 파출소, 양복점, 과일가게, 생선가게 건물이 줄지어 서 있고, 당시 의상을 그대로 재현한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아톰(1952~68년 연재)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불렀다.

이곳은 이른바 쇼와 레트로(복고풍)를 재현한 일본의 테마파크다. 복고풍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 감성을 수용해 2021년 재개장했는데, 평일에도 약 500명이 찾는다고 한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는 건 그때를 살았던 노인들뿐이었다. 오오키 사츠(86)는 쇼와 시대를 생각하면 '전쟁과 식민지'가 떠오른다고 답했다. 그는 "이때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와 고생을 많이 했다"며 "전쟁이 나면 시민들이 정말 힘들기 때문에 다신 일어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기 젊은이들은 부모와 조부모에게만 전해듣던 쇼와 시대를 어떤 세상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일본이 경제적으로 잘나가던 고도성장 시대의 향수를 듬뿍 불러일으키는 키워드가 바로 쇼와다. 도쿄에서 온 치바(24)는 "최근 레트로 카페나 쇼와 의상을 빌려주는 렌털숍이 유행하고 있다"며 "복고풍을 즐기고 싶어 일부러 찾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시절인 빅토리아(여왕 재위기 1837~1901년) 시대를 따라한 듯 '빅토리아'가 적힌 카페 간판도 눈에 띄었다. 스즈키(25)는 "할머니 집에 있던 식기나 물품들이 생각나 재밌다"고 말했다. 일본 젊은이들은 상점 곳곳에 걸린 당시의 옷과 머리장식을 신기한 듯 살펴보고, 일본 순사가 도둑을 잡는 연기자들의 공연을 보며 까르르 웃었다.

쇼와시대 '영광'만 배운 일본 MZ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다고요?

6월 24일 찾은 일본 사이타마현 세이부엔 유원지. 쇼와(昭和·히로히토 일왕의 연호) 시대(1926~89)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195

한국일보

#게임토돈 #게임 #대역전재판 #역사 #근대사 #일본사 #한국사

역사오타쿠 기준으로 보는 대역전재판 플레이 기록과 내용 설명

지식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

#역사토돈 #한국사 #동아시아사

당 왕조와 신라 왕조가 서로 싸운 역사는 단지 민족사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토번(티베트인의 조상)과 함께 당 왕조의 중화제국 확장 내지 세계 정복의 야욕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했기 떄문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라는 말이 있어요.

#역사토돈 #한국사 #동아시아사

발해에는 담비의 길이 있었다고 해요. 비인간 모피 수탈의 역사에서 발해가 기여한 부분이 큰게 러시아의 왕족이 동북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최상급 모피를 얻기 위해서 발해에 방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해요.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84

검은담비의 길, 세계를 바꾸다

검은담비(sable)의 털은 예나 지금이나 최상으로 꼽힌다. 그래서 가격도 최고다. 모피 거부 운동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지난겨울도 세계의 많은 귀부인이 모피를 걸치고 환상적 기분에 빠졌을 것이다. 동물의 죽은 껍데기에 산사람이 대신 들어서는 독특한 문화는 아직도 전성기다. 이런 모피광들에게 검은담비는 묘한 열망을 부여한다. 담비는 족제빗과 동물로 털이 조밀

시사IN, 시사인

#역사토돈 #한국사 #동아시아사

다양성이 고대에는 축복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가야의 경우에는 너무나 독자적인 가야국을 이루는 세부적인 나라의 연합체였거든요. 그래서 서로 계속해서 경쟁하고 매번 가야의 대표가 바뀌는 상황이라서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서 의견통일이 안되는 바람에 결국 나중에는 가야국의 대표격이었던 금관가야가 신라에게 먹혔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계급주의가 무너지지 않는 상황에다가 자원을 이용하는 방식이 아직 고대다보니까 충분치 못했던 게 문제였을 거 같아요.

#역사토돈 #한국사 #동아시아사

고구려의 원래 명칭은 고려였으며 고구려는 실제 역사에 기록된 것 보다도 더 오래된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신라가 제일 오래되었다는 기록은 과거 신라인들이 기록을 남길 때 시조의 탄생일을 소급적용해서 부풀렸기 때문이란 말이 있는 반면 고구려 같은 경우에는 고구려식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는 무덤 양식이 한사군(한 군현)때부터 존재하기에 고구려라는 명칭은 원래 부족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레퍼런스라든가 좀 이 내용 보강하는 거는 나중에 봐서 할 듯...

그외 고구려의 친구이자 구성원으로 볼 수 있는 돌궐이라는 민족은 나중에 튀르키예쪽 사람들이 되는데 사실상 튀르키예인들은 서돌궐이라는 사람들이라서 동돌궐인으로 불리는 고구려인의 친구와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는 말도 있어요. 뭐랄까 말갈인 중에서도 흑수말갈과 다른 말갈의 차이점 정도 아니었을까요.

사실 #고구려 역사 세탁이 덜 됐더라면 #백제 상황처럼 '고구려의 시조는 일설에는 주몽, 일설에는 송양이라고 한다' 하는 기록도 충분히 남았을 법하지 않았을까. #한국사 #고대사 #역사토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