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양기탁(梁起鐸, 1871년 4월 2일 ~ 1938년 4월 19일)

#독립협회, #신민회 등의 창건에 참여하였고,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강제 한일합방 이후 중국으로 망명,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나 1918년 11월에는 톈진에서 체포되어 압송, 2년간 거금도에 감금되기도 했다

석방 직후 1920년 8월에 방문한 미국 의원들에게 “한국 독립”을 홍보하다가 체포되어 다시 투옥되었으나, 모친상을 계기로 탈옥하여 만주로 건너갔다

1923년에는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성단(義成團)을 조직하여 만주내 일본 기관 파괴와 약탈 활동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참여하여 1926년 국무령에 추대되었으나 거절하였고, 1933년 10월부터 1935년 10월까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무령•을 역임하였다. 아명(兒名)은 양의종(梁宜鍾), 자(字)는 자명(子明), 아호(雅號)는 우강(雩岡)이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독립운동가 #김경천(金擎天, 1888년 6월 5일 ~ 1942년 1월 2일)

1919년 2월 8일 독립선언’을 계기로 일본군에서 탈출을 결심하고 #대한독립청년단, #신흥무관학교 교관 등을 거쳐 #창해청년단, #수청의병대(후에 #대한혁명단•으로 개칭) #고려혁명군 동부사령관을 지냈다

1937년 이후 소련의 한인 탄압으로 체포되 카자흐스탄 등으로 이주됬다 1939년 소련의 한인 탄압으로 다시 재수감 1942년 비타민 결핍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1936년 김경천이 3년형을 언도받은 사건은 1956년 재심되어 #무죄 선고
1939년 체포 8년형을 받은 사건은 1959년 모스크바 군사재판소에서 재심하여 #무죄•를 선언하고 다음날 17일에 #사후복권 시켰다
1993년 '정치적 탄압에 의한 희생자의 명예회복' 관련 법률에 의해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199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