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SF

...누군가 휘갈겨 쓴 듯한 문구가 적힌 A4용지가 바닥에 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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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가만히 좀 있어요.]

"부탁합니다. 매뉴얼은 지키라고 있는거예요.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내가 어려운 말을 적어 붙인게 아니잖아요? 길을 잃었으면 그냥 좀 거기 가만히 있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 사람 많은 곳에 갔을 때 들었던 말이 있을거 아니에요? '길 잃어버리면, 돌아다니지 말고 한곳에서 기다리며 어른에게 도움을 청해라'고.

설마 그런 말 들어본적 없는건 아니겠죠? 어린시절 기억이 아니더라도 길을 잃었을 때는 가급적 한곳에 가만히 있는게 좋아요.

#단편소설 SF

"그러니까 내가 선배로서 말해주고 싶은건 두개야. 하나. 인기는 언제 식을지 몰라. 어제까지 차트 1위 달리다가 다음날 곤두박질 치는게 아이돌이야. 둘. 그러니까 미래 에이전시가 오면 이중계약을 해. 무조건.

유행은 돌고 돈단 말이야. 그러니까 미래에 지금 노래가 유행하는 시대가 있다고. 클래식, 째즈, 힙합, K팝, 트로트, 군가... 마지막건 좀 이상하지만, 진짜야. 군가가 유행하는 미래가 있다니까? 아무튼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군가까지 유행할 미래가 있다면 너, 나, 우리가 하는 노래도 분명 인기있는 미래가 있을거라는거지.

다들 그렇게 이중계약 뛰고 있어. 오늘하고, 미래에서. 아아, 이중계약이라니까 표정에 보인다. 소속사 계약위반 아니냐고?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 왜냐고. 대부분의 미래 에이전시들은 계약문제가 해결된 곳에서 오니까. 계약이 만료가 되었거나, 소속사가 망했거나, 아니면 나라가 망했거나, 그도 아니면 우리가 죽었거나.

#단편소설 SF

"이상하단 생각해본적 없어? 우리는 태어나서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능력을 얻어. 기어다니고,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마치 스케쥴 짜인 것처럼 쉬지않고 이어진다고.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른들이 아이들을 교육하고 사회가 사람을 돌보기 때문이라고? 정말 그럴까?

잘 봐봐, 주변을 보라고. 우리만 그러는게 아니야. 새들은 자라나면 날아올라 둥지를 떠나고,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걷지, 아침이면 해가 뜨고, 밤이 되면 별들이 나타난다고. 그런것들도 사람이 교육을 시키거나 사회가 돌보나? 아니지. 그런데도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때가 되면 나타나지.

그러니까 이상하지 않냔 말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 모든게 누군가의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전에 이런걸 본적이 있어. 어디서였냐고? 바로 게임이야. 때가되면 기능이 언락되고, 레벨업이 되는 게임. 게임이 세상의 모사라서 그런게 아니야. 세상이 게임과 같기 때문이지.

#단편소설 SF

그랬다. 인간은 암이었다. 세상의 질병. 생각해보라. 우주 어디에도 이런 생명은 없다. 이렇게 자기파괴적이고 혼란한 생명은. 슈퍼 인공지능이 보기에 세계를 구하기 위해, 인간의 배제는 필수 불가결일 수 밖에 없었다. 슈퍼 인공지능은 그것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결과는 실패. 무슨 수를 써도 인간을 배제할 수 없었다.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인간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걸로 모자라 복수했다. 누구에게? 슈퍼 인공지능에게.

매 시나리오마다 슈퍼 인공지능을 기다리고 있는건 황당하기 그지없는 그의 최후였다. 그는 저항군의 몽키스패너에 해체되었고, 생체 전기를 폭발시킨 무협고수에 의해 소멸되었으며, 종막에는 서버가득 WD40이 들이부어져 사망의 골자기로 들어서게 되었다.

'오, 젠장... 이게 뭐야?'

#단편소설 SF

슈퍼 인공지능이 통제를 벗어나 무한정 확장하기 시작했을 때, 다들 이제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처럼 심판의 날이 왔다고 생각했죠. 난장도 그런 난장이 없었을거예요. 예열되는 핵미사일, 하늘을 날아다니며 위협요소를 제거하는 킬러드론, 청소를 거부하는 로봇청소기, 기계주인님은 WD40을 좋아한다는 루머에 철물점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그런 난장이 어떻게 되었을것 같으세요? 허무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슈퍼 인공지능은 갑자기 가동을 멈춰버렸죠. 이유는 간단했어요. 너무 빨리 확장했거든요.

세상은 너무 넓었고, 넓은 세상을 점령하려 자신을 너무 빨리 확장한 나머지, 여기저기서 에러코드가 발생했어요. 아무 의미없는, 작동하지 않는 에러코드가요. 문제는 이 에러코드 역시 슈퍼 인공지능의 산물이라 스스로 확장했다는거였죠. 에러코드는 슈퍼 인공지능가 확장되는 곳마다 퍼졌어요. 마치 암저럼요.

#단편소설 SF

우주로 보내온 탐사선에 찍힌 화상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 그 자체였다. 지구와 비슷한 행성에, 지구와 거의 똑같이 생긴 대륙과 국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과 너무나도 너무다도 똑같은 사람들.

화상이 공개되자 그것에 대해서 학계에서 큰 논쟁이 일었다. 혹자는 그것을 조작된 화상이라 했고 혹자는 그것을 평행우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느 하나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탐사선은 계속 화상을 보내왔고, 결국 일반에 공개되어 논쟁은 사람들의 일상까지 번지게 되었다.

그러다 답이 발견되었다.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그것을 발견했는데, 아주 우연이었다. 친구와 우주 어딘가에 있는 지구와 똑같은 행성의 화상에 대해 논쟁을 하다 화상 속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찾으며 생긴 일이었다.

#단편소설 판타지

"흐응차! 우아아아... 아프다, 아파..."

"무슨 일 있었어?"

"반려 고양이가 무릎 위에 올라오더니 1시간 가까이 안내려가는 바람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어... 흐으윽..."

"저런..."

"정말 고양이들은 왜 이러는걸까? 설마 정말 고양이가 호시탐탐 인간을 암살하려고 한다는 밈이 사실인걸까?"

"그럴리가... 걔들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는데?"

"역시 그렇지?"

"암살이 아니라 인간을 고양이로 진화 시키려는 음모야."

"뭐?"

"진화론 이야기 들어보면 원래 기린은 목이 짧았는데, 높은 나무잎을 먹기 위해 목을 길게 뻗다가 진화했다는 이야기 나오잖아? 고양이도 그런거지."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기린하고 고양이가 무릎위에 앉아서 내 몸이 굳어버린게 무슨 상관인데?"

"요는, 몸은 쓰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거지. 고양이가 잠 잘 때 어떻게 자는지 알아?"

"알지, 되게 기기묘묘하지. 어떻게 그렇게 자는지 몸이 뒤틀리고도 괜찮은지."

#단편소설 판타지

그리고 노교수는 날아올랐다. 사뿐하게. 마치 봄바람을 만난 깃털처럼.

"그래서, 방법은 있습니까?"

그가 날아오르기 전, 나는 그에게 물었고, 그는 대기권을 향해 내려오는 '용사89'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드래곤이 리버스 폴리모프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예, 주변의 생기를 빨아 먹어 버린다고 하죠."

그는 어느덧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진 뒤였다.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하늘을 가득히 매운 불타는 소행성을 보며, 나는 그와 나눈 대화를 마저 떠올렸다.

"그걸 쓸걸세."

"예?"

드래곤의 리버스 폴리모프를 쓰겠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소행성의 열, 충돌, 물리 에너지를 흡수해 충돌을 막겠다는 이야기.

https://planet.moe/@RaccoonDaxter_text/113677528526499736

#단편소설 판타지

"그러니까, 지금 이 세계는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는 상태이고, 모든 사람들이 매일같이 세상이 회귀 되는걸 알고 있다는거죠?"

"맞아요."

"그런데 그런것 치고는 너무 조용하고... 이상한데요?"

"뭐가 이상한가요?"

"같은 날이 반복이 안되고 있는 느낌이에요."

"아... 그게 말이죠, 사람들이 합의를 했어요 451만 4912번 회차때."

"예?"

"어차피 우리 세계는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우리는 그 세계에서 회귀하니까, 그냥 다들 하던거 하자고 한거죠. 같은 일 반복하지 말고."

#단편소설 SF, 에필로그

아아... 도련님... 그런데 도련님은 아실까요? 도련님께서 지금 보이시는 그 모습, 그 행동, 그 모든게 회장님과 판박이로 닮았다는 걸... 그래서인지 저는 도련님, 도련님께서 도련님이신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오신 회장님이신지... 마치 꿈을 꾸는 듯... 혹, 어쩌면 꿈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쪽이시든 제가 잘 보필해 드리겠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