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판타지

이제 도련님도 회장님의 자리에 앉게 되실테니, 미리 말씀드리는겁니다. 저희 회사에는 골판지 분리수거 팀이라는게 있습니다. 지하실에 있죠. 그룹에는 회장님 눈에 거슬린 사람들이 가는 좌천부서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그 반대죠. 회장님이 필요하신 사람들만 골라서 만든부서입니다.

예? 무슨 일을 하는 부서냐고요? 아, 회사에 아주 중요하고 더러운 일을 하죠. 밖으로 알려져서는 절대 안되는 일을... 예? 청부살인이냐고요? 그럴리가요. 그쪽팀은 따로 있는데 나중에 안내해드리죠.

골판지 분리수거 팀이 무슨일을 하는지 이해하시려면... 우선 지난번에 있었던 대규모 고객정보해킹사건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지난번에 운영팀에서 A국가의 전문 해킹팀에 공격을 받았다고 언론에 발표했죠. 고도로 훈련받은 독재국가의 해커들이 최신의 보안AI를 뚫고 고객정보를 빼돌렸다... 라고요.

사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닙니다. 해커들이 고객정보를 빼돌린건 맞습니다. 하지만 누군지 알 수 없었습니다. 최신의 보안AI도 사실이 아니죠. 그런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예? 그럼 보안AI를 도입하면서 잘라버린 보안전문가들은 어떻게 된거냐고요? 하하... 날카로우시군요. 역시 차기 회장님의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냥 정리해고죠. 적당한 구실이 필요했는데, 지금까지 적당한게 없었거든요. 뭐, 보안전문가들이 있는 동안 아무일도 없었잖습니까? 아무일도 없는데 월급 타가는 놈들을 회사에 남겨두면 다른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예? 이제 무슨 일이 생긴것 아니냐고요? 하하! 역시 날카로우시다니까요. 맞습니다. 뭐... 그래서 골판지 분리수거 팀이 필요한거고요.

무슨 말이냐고요? 하하... 이렇게 생각해보시죠 도련님. 자사의 고객정보가 개털렸는데, 누가 털어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회사에는 최신의 보안AI를 도입한다면서 보안팀을 다 잘랐다더라... 그러면 언론이 우리 그룹을 어떻게 볼까요? 골판지 분리수거 팀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예방대응하는 팀입니다.

A국가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는 존재하지 않죠. 이미 십수년전에 망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요. 우리 회사가 그 국가를 이어받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이름만요.

나라가 망했으니 무주공산이잖습니까? 누가 A국가의 이름을 내걸어도 상관없었죠. 회장님이 생각하시기에, 우리가 내걸어도 상관없겠다.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내걸었죠. 어떻게요? 만들었습니다. 망명정부를 만들고 그 성명을 전 세계 언론에 뿌렸죠. 영토도 없고, 국민도 없고, 심지어 망명 정부도 없는 망명 정부. 페이퍼 네이션.

그렇게 만든 페이퍼 네이션을 필요할 때 써먹었습니다. 어떤 때는 조세피난처로, 어떤 때는 관세 우회국으로. 아, A국 망명 정부가 150개국과 FTA를 채결한건 모르실겁니다. 완전 관세 청정지역이죠.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을 때는 공포의 해커부대를 조직하는 독재국가로. 맞습니다. 운영팀에서 이번 고객정보 해킹 사태의 배후에 A국을 지목한건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운영팀이 그런 발표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A국 망명 정부의 선언문이 나온 것도 그런 이유고요. 전세계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전자혁명을 일으키고자 한다. 제법 그럴싸한 말이죠?

예? 전자혁명이라는 말은 지난번에 회장님이 팽해버리신 B상무가 자주 하던 말이라고요? 정말 예리하십니다. B상무님은 작년 말에 골판지 분리수거 부서로 옮기셨죠. 좌천이 아니라 승진이었습니다.

골판지 분리수거 팀이 그런 부서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A국 망명 정부의 실질적인 관리 부서죠. 전 세계 조세피난처, 관세우회로, 그리고 이렇게 각 기업에 곤란한 일이 있었을 때 서로의 엉덩이를 닦아주는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같은 사건 말입니다. 설마 우리만 보안부서 직원들을 잘랐을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하하, 기업트랜드입니다. 있는 곳이 삼류기업이죠.

가끔은 직접 개인정보를 팔기도 하고요. 골판지 분리수거 팀의 매년 실적이 어디서 나올까요? 정말 골판지 분리수거라고 생각하신건 아니죠? 절반 이상은 직접 고객 개인정보를 팔아서 만듭니다.

불법아니냐고요? 하하! 농담 재미있으시네요! 걸리면 불법이죠. 걸리기 전에는 합법입니다. 걸려도... 뭐... 우리에게는 A국이 있잖습니까? 그러니 걱정마십시오. 애초에 약관 읽어보지도 않고 동의하는 고객들이 문제 아니겠어요? 하하!

아무튼, 원래는 회장님이 되신 다음에 알려드려야 하는건데... 우리 도련님께서 이렇게 영민하셔서, 미리 알려줘도 상관없겠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역시 내가 꼽은 차기 회장이야. 라고 말씀하시면서요.

예? 회장님이 어떻게 말씀을 하셨냐고요? 뇌출혈로 쓰러져서 수술을 받으시고 식물인간상태 아니냐고요? 하하... 그 부분도 조금 설명을 드려야겠군요.

사실, 그건 회장님이 말씀하셨으면서 동시에 도련님이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무슨말이냐고요? 하하, 사실 이건 청부살인팀까지 설명드리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혹시 기억 나시나요? 회장님께서 수술실에 들어가시던 날, 도련님께서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셨죠. 혹시 회장님에게 장기 이식이 필요할지 모르다고 말이죠. 예예, 그때 말입니다. 도련님이 뇌 수술인데 장기이식이 왜 필요하냐? 물어보셨죠...

사실, 그때 장기이식을 했답니다. 도련님이 건강검진 받으러 갔을 때 말이죠. 도련님이 좋아하시는 프로포폴 맞고 푹 주무시는 동안 말이죠...

오! 놀라시는 표정이 보기 좋습니다! 정말 회장님을 닮으셨어요! 안심하세요! 도련님의 몸에서 뭘 빼낸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렴요, 회장님이 새로 사용하실 새 몸인데, 뭘 빼내면 안되죠... 맞아요... 그날 이식한건 회장님의 뇌의 일부입니다. 그 일부를...

"도.련.님.의.머.리.에.넣.었.죠."

원래 회장님의 몸이 아닌 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사용될 컨버터가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도련님의 뇌의 일부를 도려내고, 회장님의 것을 넣었습니다.

요즘, 기억이 가물가물하시고 자꾸 입맛이 바뀌시죠? 술취한듯 블랙아웃도 자주오고요? 프로포폴 중독인가 싶으시죠? 걱정마세요. 아주 정상입니다. 그 시기에 회장님이 깨어나시는 거니까요.

점점 블랙아웃 빈도가 늘어나는건 그만큼 몸에 대한 회장님의 지배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의사가 회장님의 기억을 더 빨리 끌어내려면 평소에 알고 계시던걸 자주 보여드리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룹의 비밀을 이렇게 알려드리는 겁니다... 하하...

오, 도련님... 너무 놀라셨군요... 너무 놀라지 마세요... 아직 아셔야 할 회사의 그룹이 너무 많습니다...

어서 많은걸 보고, 배우셔서...

"회장님이 되셔야지요."

#단편소설 판타지

"도련님,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블랙아웃이 안되시는군요? 이래서는... 어라? 눈가에서 피눈물이 흐르는데 괜찮으신가요?"

"흥... 빌어먹을 아버지는 더는 없어..."

"예?"

"아버지는 내가 죽여버렸다."

"예?"

"눈으로 얼음송곳을 넣어서... 정확하게 아버지가 느껴지는 곳을 헤짚었어..."

"오..."

"빌어먹을 아버지... 내 머릿속에서 쉬지않고 떠들었겠다? 내 몸을 뺏으려고...?"

"오오..."

"어... 어림없어... 내몸이야... 내거라고... 누구 마음대로... 내 몸을... 망할 영감탱... 망할 자식..."

"오오오... 도련님..."

"너도... 너도 해고야... 감히... 내 몸에 그딴 영감을..."

"과연 도련님이십니다... 과연 영민하십니다... 이로서 회장님이 되실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군요..."

"...뭐?"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죠, 도련님은 영민해서 뭐든지 빨리 배운다고요. 빨리 배우니, 답도 빨리 찾으신다고요..."

"무슨 말을 하는거야? 왜 우는거야?"

"기뻐서 그렇습니다... 도련님께서 회장님의 기록을 깨셨거든요... 그 어떤 선대 회장님들도 깨지 못한 회장님의 기록을 도련님이 깨셨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하는 법이죠. 알은 새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의 세계죠. 누구라도 어른이 되려는 아이는 그 부모를 깨트려야 합니다."

"뭐... 뭐라고?"

"회장님부터 선대 회장님, 선대 회장님의 선대 회장님... 우리 그룹의 모든 회장님은 그렇게 그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

"그 자리는 그만한 무게가 있는 자리니까요... 부모를 깨트리지 못하는 아이는 자격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도련님께서는 방금 그 무게의 자격을 스스로 얻으셨습니다..."

"그... 그럼 이 모든게..."

"그렇습니다... 모든게 시험이었죠..."

"내... 내가... 아버지를 죽이는게... 그게 모두 계획이었다고?"

"예, 맞습니다... 도련님..."

"앗... 아아... 아아아..."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저희 그룹의 회장님이 되셨습니다"

...그는, 나에게 눈물을 거두라 하였다. 새로운 회장이 탄생했으니, 이보다 기쁠 수 없다고.

하지만 이제 안다.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는 이유를. 그것은 세상에 던져진 비참함. 자신이 속했던 낙원에서 추방될 수 밖에 없다는 공포를 토해내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눈물을 거둘 수 없었다.

"아아... 아아아..."

나는 공포를 토해냈다.

#단편소설 SF, 에필로그

아아... 도련님... 그런데 도련님은 아실까요? 도련님께서 지금 보이시는 그 모습, 그 행동, 그 모든게 회장님과 판박이로 닮았다는 걸... 그래서인지 저는 도련님, 도련님께서 도련님이신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오신 회장님이신지... 마치 꿈을 꾸는 듯... 혹, 어쩌면 꿈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쪽이시든 제가 잘 보필해 드리겠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