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차리석(車利錫, 1881년~ 1945년 9월 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1939년 10월 2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출되었다.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비서장에 선출되었고, 1944년 4월 다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겸 비서장에 재선되었다

1945년 8월 쓰촨성 중경에서 광복 소식을 접하고 환국준비로 인한 과로로 9월 5일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였다. 9월 9일 환국 직전 사망하였다. 사망하기 직전 ”광복이 되었는데 왜 귀국하지 못하고 죽어야 하느냐“며 병상에서 애통해 했다 한다

“차리석 선생은 해외 혁명운동자 가운데 특히 강력한 정신력을 소유하시기로 유명했다. 탁월한 사무처리의 능력이나 병 중에서도 최후의 일각까지 맡으신 사명을 완수한 강한 책임감은 한국 독립운동에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 1948년 사회장 당시 #이시영, #김구•의 추모담 중에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독립운동가 #차리석(車利錫, 1881년 ~ 1945년 9월 9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일명은 #서입환(徐立煥)이고 호는 동암(東岩)이다.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

1908년 도산 #안창호*가 설립한 #대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며, 안창호와 #양기탁’이 주도한 #신민회 평양지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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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이영훈 이승만 학당 교장이 2019년 자신이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외증손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차리석의 외아들인 #차영조 씨는 이영훈은 차리석 선생의 외증손자가 #아니다’고 밝혔다. 차리석 선생의 외아들인 차영조 #독립유공자유족회 선생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큰아버지의 둘째 딸의 딸과 30년전 부터 교류하고 있는데 그분(이양자교수)에게 확인했더니 이영훈 명예교수는 나의 큰아버지의 외증손자일 뿐이다. #차리석 선생의 #외증손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