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9년, 일본의 지방 다이묘였던 사쓰마는 류큐왕국을 침공하여 실질적인 지배 아래에 두었다. 그러나 사쓰마는 류큐왕국을 폐하지 않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중국력을 사용하도록 했고 중국에 계속 조공을 바치게 했다. 조공책봉관계에서 보자면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 중국은 조공국에게 많은 답례품을 주었기 때문에 일종의 무역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 때마침 일본은 도쿠가와 정권에 의해서 쇄국이라는 무역관리체계로 들어갔던 때였으므로, 사쓰마는 류큐를 경유해서 중국 물산을 입수하여 중계무역을 담당했다. 사쓰마는 이러한 중계무역과 사탕을 필두로 한 류큐의 물산을 수탈함으로써 경제를 윤택하게 했고, 그 자본을 바탕으로 메이지유신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오구마 에이지, 《'국민'의 경계: 오키나와·아이누·타이완·조선》, 제1장 [류큐처분: '일본인'에의 편입]의 첫 번째 절 ['국내 인류'에의 통합과 배제]에서 #발췌